후배들아!! 네들 뭐하니?

해외 연수나 여행, 머 그런거 갔니?
연애하니?
아니면, 경제가 어렵고 뒤숭숭하니 미리부터 각종 고시에 대비해서 학원다니니?
공무원 준비하니?

오늘 전대협 동우회에서 30대 후반부터 40대에 이르는 선배들이 집회의 선봉에 스셨다


 
눈물이 핑도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후배들에게 묻고 싶다.
선배들의 선두에 선, 저 강인한 모습이 그저 감동적이기만 한가?
선배들이 목숨걸고 만들어놓은 것을 우리 세대들은 과연 제대로 지켜내고 있었던 걸까? 
선배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함께 하며, 지금의 촛불대오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으로도 감동인데,
다시 거리의 촛불 선두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이 해야할 일을 대신하는 모습이 과연 지금의 20대들에겐 감동적이기만 한걸까?
전대협 정신을 이어받아, 90년대 학생복지를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던 한총련은, 이제 자취를 찾을 수 없고,
지금의 대학생들은 뭐? '한대련'?
명칭이 무엇이든지간에 볼 수가 없다

93년 문민정부 YS정권의 탄생... 김영삼의 집권 후,
93년은 운동의 소강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문민이 정권을 잡았으니까, 어느 정도 기대할만도 했을 것이다.
94년,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해이다.
입학하자마자 3월 중순부터 난 명동에 나갔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대감과 희망을 갖게했던 문민정부 YS에 대한 배신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이어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투쟁이 커졌다.
93년 이전에 거리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은 커다란 오산이었다. 
94년부터 투쟁은 끊이지 않았다. 문민정부라고 다를 게 전혀없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우고, 현실을 통해 몸소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96년 열사가 탄생했다. 제기랄...
잊을 수 없는, 침통하고 분노에 찬 일이었다. '노수석 열사'의 죽음...
분노에 치를 떨었다.
우리는 오열하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수석이를 살려내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연세대 안에 갖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밀리고 밀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구석구석까지 도망치기도 했고,
연대 앞 정문에서 정경들의 최류탄과 지랄탄에 죽을 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의 선후배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서로를 격려하며 그렇게 버티었다.
그렇게 버틴 결과, 절대 해산하지않는 투쟁대오에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전경들의 모습에 환호를 했으며,
우리들은 승리를 예감하기도 했었다.
결국, 노수석 열사의 사인이 심장마비로 결론내려지고(심장질환이 있었다나? 기가찰 노릇), 제대로된 규명없이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않으며, 학내에서든, 노동자들의 투쟁이든 힘을 다해 함께 했었다.

그리고, 그 후
97년 본격적인 한총련 탄압, 노동자 탄압, 그리고 다른 진보적 집단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구속수배자는 날이 갈 수록 늘어났으며, 검찰의 한총련 소속 학생회에 대한 한총련 탈퇴 압력이 시작됐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그 어떤 사항도 공론화되지 못했고, 언론에서는 일언방구도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단대 학생회장이었던 나의 절친한 후배는 술잔을 기울이며 심정을 토로했다
집까지 찾아와 부모님 앞에서 한총련 탈퇴를 종용, 압력을 넣은 검찰에 분노하면서도, 두려움이 앞선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대의를 져버릴 수 없음에 괴로워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후배에게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헤어지면서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너의 결정을 믿는다. 힘내라'였다.
이게 무슨 귀신 신나락까먹는 소리였는지.. 난 그때 그랬다.
괴로워하는 후배를 도와주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나 역시 괴롭고 침통했지만,  
네가 알아서 결정해라...라는 식의 말은 너무도 무책임한 말이었다. 
결국, 그때 그 후배는 한총련 탈퇴에 서명을 했고...
지금은 학교 선생님으로, 두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다.

나를 비롯해서 90년대 학번들은 그랬다. 
몇몇은 진보단체에서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찾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촛불집회에서도 그들의 존재는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모른다. 개별적으로 가족과 함께 시청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을 지도... 나처럼...

그 이후 후배들은 개인화되고, 이기주의화되고, 우경화된 모습으로 변했다. 
선배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졸업 당시 우리 학교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동아리 출신애가 총학생회장에 선출되더니, 지금은 가관도 아니다. 
학내 학생이 전경의 군화발에 밟히며 폭행당하는 장면이 공개되자, 깃발 한번 들고 참여했다.
학내 투표를 통해 촛불집회 참여하겠다고 하더니만,
'촛불의 변질' 운운하며 참가를 철회하는 둥... 2MB 스러운 짓을 반복한다.
2MB스럽다는 말이 너무 심한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내 후배들은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
부끄럽고 창피하다.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상황 아닌가?
광우병뿐인가?
정부의 언론장악의 행태를 보시라...
YTN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태섭 이사의 해임 역시 시작에 불과하다.
오늘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의 인터뷰 기사를 봐라..
이건, 정말 심각하다.

조중동 광고 불매 운동 카페회원들에 대한 수사하며,
뭐? 게시물 이외에 댓글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게다가 사망설을 제기했던 카페지기는 현재 재판중이다. 뭐 이런 쓰레기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독도문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한 대응 태도를 봐서 알겠지만, 외교정책도 심각하다.
이미 예견된 바이긴 하지만...
민영화?
이건 더 심각하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신문도 안보고, 뉴스도 안보나?
조중동만 보고, 국영방송 ktv만 보나?

대학재학시절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정부와 검경의 압력에 못이겨 수세적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에 통감한다.

지금의 대학생 후배들아, 제발 사회에 관심 좀 갖어라.
지금 당장 느끼기에, 사회문제는 외부문제같지?
이게 다 네들 삶에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제발, 네들 개인의 삶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 좀 갖어라.
조중동 말고, 제대로된 언론들을 접하면서 제대로된 정보들을 보고 생각 좀 해봐라.

네들이 깃발들고, 촛불들고,
폭우 속에서도 굴하지않는 시민들과 함께 하기를 바라마지않지만,
그것도 힘들다면, 최소한 제대로된 언론들을 접하면서, 반성의 시간이라도 갖길 바란다.
개별적으로라도 촛불들고 거리에 나와 '체험'해보길 바란다.
후우...

어쨋든, 전대협동우회의 모습은 아마 촛불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에게 강한 정신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을 것이다
저 굴하지않는 강한 의지와 흩어짐없는 저 정연함에 모두들 단단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저 선배들의 '강함'과 '정연함'과 '단단함'을,
가장 똑똑한 지성인이어야하고, 불의에 저항적이어야할 젊은 우리의 후배들이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by imperfect | 2008/07/20 03:36 | MB Out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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